수성이 창업보다 쉽다?

수성이 창업보다 쉽다?

요즘 한류드라마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클리셰 중에 하나는 바로 재벌 2세, 3세 타령입니다. <파리의 연인>, <꽃보다 남자> 등등 해서 말도 안되는 신데렐라 스토리가 이렇게 오랫동안 인기를 끌 수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경이롭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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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방영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꽃보다 남자>의 F4와 금잔디. 개연성따위 버려놓고 보면 볼 만 했던 듯 합니다.)

저도 드라마를 많이는 보지 않아서 잘은 모릅니다만, <꽃보다 남자>의 예처럼 2세들이 행동하면 도대체 어떻게 될까요? 최근 이에 대해 연구한 기사를 언뜻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경험없는 2세의 권력 승계 이후에 배임이니, 부실 경영이니 해서 경쟁에서 사라진 대한민국의 대기업들만 수십 군데인데, 그 중 몇몇은 우리나라 재계 순위 20권에 들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중기중앙회의 연구에 따르면 안타깝게도 30% 남짓한 숫자 만이 제대로 된 교육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좋든 싫든 결국에는 우리나라의 리더들인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는 비단 21세기 만의 현상일까요? 오늘의 이야기는 바로 수성에 실패해 제대로 말아먹은 후계자 양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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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난 양제야. 내 이야기 한 번 들어볼래?)

6세기 후반 중국은 남북조 시대의 혼란기였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삼국지(유비, 관우, 장비, 조조, 손권, 공명 아시죠?) 위촉오 시대의 중국은 위나라에서 발생한 진나라에 의해 통일됩니다. 그리고 진은 동쪽으로 밀리다가 쿠데타에 의해 멸망하게 되지요. 중국의 ‘천하’는 네 개로 쪼개졌고, 그 네 가지 영역 안에서 또 자기들끼리 왕조를 세웠다가 말았다가 하며 치고 박고 싸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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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세 개로 나뉘어 져있던 중국이(위촉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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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통일이 됐다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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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렇게 쪼개집니다(남북조). )

때는 580년, 북주라는 나라의 황제 선제의 장인이던 섭정 양견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양견은 그야말로 천재적인 군사 및 정치 능력을 보여주며 북주를 장악함과 동시에 통일전쟁을 벌입니다. 이 사람은 10여 년 만에 지난 300여 년 간 통일되지 않았던 중국 대륙을 복속시키는 실로 말도 안되는 능력을 보여주며 수나라 문제로 등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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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엉망진창이던 대륙이 이렇게 정리가 되었습니다.)

수나라 문제가 그렇다고 해서 싸움꾼이었느냐 하면 또 그건 아니었습니다. 정복 전쟁이 끝나자마자 양견은 국가 수리 작업에 착수합니다. 전후 재건이라는 당연한 과제부터, 멸망 왕족 처리, 문화적 차이 극복 등등 그가 넘어야 할 산은 넘치고 넘쳤습니다. 이 사람이 단순한 싸움꾼이 아니었다는 걸 증명하는 사례로는 정복전쟁 후반기에는 수나라의 민가 수가 늘고 있었다는 것이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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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나라 문제 양견입니다. 세계 역사의 흐름을 읽다 보면은 보통 몇 백년에 한 번씩 나와서 정리를 싹해주는 걸출한 청소부들 중의 한 명이지요.)

‘개황(문제의 연호)의 치’라고 불린 그의 치세에는 선거제(과거제의 원시 형태) 실시를 통한 중앙집권화와 균전제를 통한 소작농 지원 정책들이 실시되어 그야말로 서민들에겐 유토피아 였습니다. 인구는 폭발했고, 전쟁이 없어 징병당하지 않으니 등록인구 또한 급증해 국고는 순식간에 불어났습니다. 이 엄청난 노동력을 놀리기 싫었던 양견은 양자강과 황하강을 잇는 대운하 공사를 시작하지만 백성들의 고초가 들리자마자 그만두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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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이 수나라 문제가 포기하자 훗날 양제가 건설한 운하입니다. 이후 명청 시대에 개수 및 확장이 이루어져 현재 북경과 양주를 잇는 경항대운하의 근간이 됩니다. )

하지만 이런 슈퍼맨 황제에게도 약점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그의 아내 독고황후가 되시겠습니다. 독고황후는 지금 기준에서 봤을 때에도 굉장한 내조의 여왕이었는데, 그 교양과 학식이 남편 양견과 국가 정책의 실효성을 논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렇듯 양견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던 황후는 양용과 양광, 두 아들을 문제에게 낳아줍니다.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부부는 황태자 양용의 방탕한 생활을 매우 혐오했습니다. 매일 술 퍼마시고 하라는 공부는 안하는 자식의 생활을 좋게 보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만은, 독고황후의 양용 혐오는 조금 도가 지나칠 정도였습니다. 이를 이용한 건 바로 동생 양광(훗날 수 양제)이었습니다. 형과 다르게 그는 자신의 첩을 숨기고 매일 독서하는 척하며 정치에도 참여하려는 듯 보였습니다. 이러니 엄마가 양광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지 않겠습니까?

결국 양용의 세자빈이 병으로 사망했을 때 양광의 신의 한 수가 발동하게 됩니다. 바로 독고황후가 양용에게 간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양용의 애첩을 보낸 것입니다. 황태자가 첩과 시시덕거리는 줄 알았던 황후는 문제에게 달려가 양광을 태자로 책봉하도록 요구했고 노발대발한 문제는 양광을 후계자로 삼습니다.
독고황후가 사망한 뒤에 양광은 본모습을 보입니다. 이제 걸리적거릴 것이 없었던 양광은 사치 향락을 일삼다 급기야 아버지의 애첩 진씨를 건드리게 됩니다. 문제는 그 당시 병이 위중해 양광의 행동들을 보고만 있었지만, 진씨의 통곡을 들은 후에는 진노해 양광을 소환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양광의 막장행보는 진정한 스타트를 끊게 되는데요, 바로 휘하 장군 양소와 장형과 모의해 자신의 아버지와 형을 선수쳐 암살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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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연개소문>에서 수 양제 양광을 열연하신 김갑수 옹. 이 망작 드라마에서도 그 포스는 연개소문을 병풍으로 만들 정도 였습니다.)

아무튼 이러이러한 일들을 하고 양제로 등극한 양광은 제대로 된 대륙의 기상을 보여줍니다.
그가 즉위하자마자 한 일은 바로 만리장성 다시 쌓기! 

이미 아버지 대에 통일전쟁 동안 북부 경계는 확실히 해놓은 바 있었기에 쓸데 없이 일을 벌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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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색의 길이만 눈대중으로 봐도 한반도보다 깁니다. 이걸 도대체 어느 세월에 다시 쌓는단 말입니까;; 미친거죠 그냥.)

그리고 양제의 다음 미션은 바로 앞서 말한 대운하 만들기!
그럼 운하를 그냥 만드느냐? 아닙니다. 초 거대 사업인데 황제 폐하께서 친히 시찰을 나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백성들이 선물들고 나와서 환영을 해야하죠? 양제가 가는 고을마다 백성들은 음식을 들고 나와서 바쳐야 했습니다. 그걸 그럼 폐하께서 잡수시느냐? 아닙니다. 그냥 땅에 묻고 떠났습니다. 근데 이걸 한두 번도 아니고 몇 번을 하니까 서민 경제가 남아 나겠습니까. 그리고 황제 폐하께서 행차를 하시는데 아무데서나 지내실 수 있겠습니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의 대륙맨 양제는 친히 운하를 따라 궁전을 40개나 건설하는 위엄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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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남아있어 사용 가능한 수나라 대의 운하입니다. 후세인들을 위해 자기 나라를 하얗게 불태우신 양제에게 박수.)

양제는 ‘용주’라고 불린 커다란 배를 만들어 운하를 타고 유람했다고 합니다. 한 번은 공사가 잘 되지 않아 배가 잠깐 멈춘 일이 있었는데, 만 오천 여 명에 달하는 인부들을 그 자리에서 생매장시켜 해결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장대한 피날레는 수나라의 정신줄을 한 방에 날려버린 고대 동아시아 최고의 삽질 고구려 침공!
이미 수 문제 때에 지방 세족의 관심을 돌리려 30만 병사를 양용과 양광에게 맡겨 고구려를 쳤다가 대차게 깨진 적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분노해 아들들에게 자결을 명했지만 독고황후가 애원해 살려줬다고 하는데, 이때부터 양광은 고구려를 집착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먼저 양제는 북쪽의 위치한 고구려의 동맹인 돌궐을 몰아내는 데 성공합니다. 이 때 돌궐에서 고구려에 사자를 보내 수나라 군의 실태를 알려 줬다는 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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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은 튀르크의 한자 음차에 불과합니다. 그렇습니다. 터키할 때 말하는 그 튀르크입니다. 형제의 나라라는 말이 바로 삼국시대 고구려와의 동맹에서 나온 것이지요.)

돌궐을 복속시킨 양제는 모든 물자를 북경으로 집중시킵니다. 113만 대군을 편성하고(양제 직속만 40만이었다고 합니다.) 10만 수군, 병선 300척을 장군 내호아에게 내주어 진군하도록 했습니다. 이 배들을 제 시간 안에 만드느라 일꾼들이 물 밖으로 나오질 못해 배와 내장에 구더기와 기생충이 들러붙는 변을 당했다는데 솔직히 믿기 힘든 내용이네요. 그 밖에 물자를 수송하고 보급하는 인부의 수도 200만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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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한일 월드컵 당시 광화문 광장에 모인 붉은 악마들입니다. 지금도 그 함성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이게 30만 명인데, 이 사진의 10배라니 상상조차 되지 않네요.)

고수전쟁은 그 자체만 해도 글 5개 정도 분량이니 깊게 들어가진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글은 수나라 그룹의 재벌 2세 양제의 삽질을 소개하는 내용이거든요. 숫자만 설명하자면, 첫 번째 관문인 강 요하를 두고 고구려와 2달 간 싸운 후 강을 건넜을 때 수나라는 30만 명 남짓한 병력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순전히 전투 손실은 아니었고, 탈영, 질병, 보급 등의 비전투 손실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양제는 좀 더 진격해 요동성을 포위하지만 일이 될 리가 없었지요. 요동성의 고구려 군은 항복하는 척하고 시간을 벌었다가 다시 공격하고 다시 항복하는 척하고 공격하고를 반복하고 있었거든요.

양제는 하는 수 없이 옆에 있던 조그만 육합성을 깨려고 노력하지만 이 사람이 뭐가 되는 일이 있겠습니까? 빡칠 대로 빡친 양제는 내호아의 수군에게 고구려의 수도 평양을 직접 공격하라고 지시하고 육군도 보내지만 실패하고 돌아오는 길에 그 유명한 살수대첩에서 제대로 말아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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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영웅 을지문덕 장군이 살수에서 수나라 군을 몰살한 후 살아남은 병사는 2700명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113만을 이끌고 출정해서 2700명을 데리고 온 양제는 생존률 0.23 퍼센트의 배틀로얄에서 살아남은 영웅이었습니다. 물론 수나라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겠지만 말입니다. 이후 양제는 다시 한번 30만 대군을 동원해 고구려를 침공하지만 결과는 뻔했습니다. 이건 뭐 바보도 아니고…

이제 양제의 막장행보도 막을 내리려 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문제 때부터 시행된 균전제로 인해 플랜테이션 농업을 모두 몰수당한 지방의 중소기업들이 다 같이 연합해 수나라 그룹을 때려부수기 위해 들고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문제 치세 때 부터 있었던 불만이 문제가 손도 못 대던 게 양제 때 터진 거라는 시각이 있는데 제 생각은 다릅니다. 양제의 정치력 부족이 주된 이유지 문제의 카리스마로는 그 당시 정복군주의 권위로 뭐든 다 할 수 있었을 겁니다. 아무튼 그의 사촌 뻘인 지방 세족 이연 또한 반기를 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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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고조 이연입니다. 이 사람도 그리고 그 아들 당 태종 이세민도 고구려를 멸망시키려하지만 둘 다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습니다. 생각해보면 고구려 멸망시키기가 당시 중국 황제의 이룰 수 없는 이상이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훗날 당나라 그룹의 회장이 되는 이연은 그의 똑똑한 아들 이세민(당 태종)과 함께 장안으로 쳐들어가 양제를 폐위시킵니다. 아직 사태파악을 못한 양제는 계속해서 술 퍼마시고 놀다가 자신이 살수대첩 이후 처벌했던 장수 우문술의 아들들에게 목이 달아납니다.
그의 이름에서 ‘양’은 주색잡기에 취해 나랏일을 소홀히 하고 여색을 탐해 백성을 착취하며 하늘을 거역했다는 뜻이라고 하네요.

물론 어느 후계자라도 수 양제처럼 되기는 좀처럼 쉽지 않을 것입니다. 광기만으로는 부족한 그 무언가가 양제의 삽질에는 분명히 있었습니다. 수성이 창업보다 훨씬 어려운 만큼, 부디 우리나라 기업들은 후계자 승계 교육을 철저히 해 양제같은 꼴이 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만약 우리나라에 팽배하는 기업 세습 풍조를 없애고 싶지 않다면 최소한 우리나라의 기간을 차지하는 산업에 대해서는 가족과 개인의 회사 이상의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법에서는 판례를 보고 미래를 결정하듯이, 경영인들도 이공계에만 치중하기 보다는 인문학과 역사를 보고 미래를 내다보았으면 좋겠네요.

사진 출처:

http://emeng.tistory.com/206
http://korean.cri.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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